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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정기용, 무주공공건축 프로젝트[무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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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정기용(鄭寄鎔)[1945~2011]은 인위적 건축을 배제하고 자연이나 주어진 환경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이다. 그래서 그를 '흙 건축의 대가', '생태 건축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건축 작품을 하면서 '사람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공공 건축'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기용은 1945년에 충청북도 영동 지역에서 태어났다. 1971년에 서울 대학교 미술 대학과 대학원 공예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하여 1975년에 프랑스 장식 미술 학교[ENSAD] 실내 건축과와 프랑스 파리 제6 대학[UPA6] 건축과를 졸업하였으며, 1982년에는 프랑스 파리 제8 대학 도시 계획과를 졸업하였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건축 교육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이야기하는 것이 "먼저 미술을 공부하고 그 다음에 건축을 공부한 다음 도시를 공부하는 것이다"인데, 정기용은 그러한 교육 과정을 우리나라와 프랑스에서 거쳤다. 이후 프랑스에서 프랑스 공인 건축사 자격증[Architect DPLG]을 취득하고 파리에서 건축 및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다가, 1986년에 귀국하여 '기용 건축'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건축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기용이 남긴 작품으로는 계원 조형 예술 대학[1990]과 서울특별실 종로구의 동숭동 무애 빌딩[1993], 경기도 의왕시의 청계동 주택[1995], 진주 동명 중·고등학교[1996], 서울 예술 전문 대학 드라마 센터 리노베이션[1996], 무주 공공 프로젝트[1999], 기적의 도서관[전라남도 순천시,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와 서귀포시, 전라북도 정읍시, 경상남도 김해시], 코리아 아트 센터[2003], 경기도 파주시의 열림원[2006] 등이 있다. 저서로는 『감응의 건축』, 『사람 건축 도시』, 『서울 이야기』, 『기적의 도서관』, 『기억의 풍경』이 있다.

 

[무주와의 인연]

정기용이 무주와 건축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본인 말대로 우연에서 시작된다. 즉, 그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같이 참여하는 '이행기의 문화 운동[accaic]'이라는 모임에 참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모임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건축이나 도시에서 문제점을 찾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다른 지역, 다른 국가의 사례를 조사하는데, 이러한 외국 사례는 목적이나 배경, 내용, 전개가 우리의 것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즉, 문제는 문제 자체에서 인식하고 문제점을 찾고자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실례로 "무주 안성의 문제는 무주 안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먼저 우리가 사는 도시에 대하여 잘잘못을 판단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사는 도시에 대하여 사실을 올바르게 알고 그 내용을 축적하고자 우리나라의 도시 여행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산업 도시인 구미, 전통 도시인 안동을 답사하였고, 이후 창원을 여행하기로 한 계획을 변경하여 무주로 가게 되었다. 그들은 이전에 답사하였던 도시에서 이중적이고 설익은 과일처럼 미완성이었다는 느낌을 받은 반면, 무주는 우리나라의 변하지 않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 중 무주 안성 지역에서 청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자기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 골프장을 백지화하고 예술인 마을을 계획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무주와 안성의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정기용은 '여기가 천국이다. 이 땅을 그대로 보존해 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청년들과 같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는 이들 청년들과 '무수동 예술인 마을'을 만들기 위하여 1년여 동안 작업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96년부터 10여 년간 무주에서 건축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 '무수동 예술인 마을[구름 샘 마을]'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하여 실패하였지만 정기용이 무주와 건축적인 인연을 맺은 첫 작품이 되었다. 이후 한 목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목사와 같이 흙 건축에 관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작업을 시작하여 진도리 마을 회관을 흙 건축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또 거기에서 무주 군수를 만나 서로 건축에 관한 대화를 하면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무주 군수와 정기용은 무주군의 건축 설계뿐만 아니라 건축 프로그램 기획까지 함께하기로 하여, 첫 번째로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무주군에서 정기용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며,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주의 공공 건축가'가 되었던 것이다.

정기용은 무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나라 농촌의 공공 건축이 주민의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즉, 건축은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주민들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대도시의 건축에 비하여 농촌의 건축이 열악한 것은 건축이 농촌의 삶을 배려하지 못하고 형식적이며 단순히 건물을 생산해 낸다는 점이었다. 정기용은 공공 건축은 한 사회의 문화적인 지표가 되고 건축이 문화가 되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주 프로젝트에서 정기용이 근본적으로 추구하였던 건축적 정신은 '농촌 건축은 사람과 식물과 시간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즉, 건축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과 식물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지 건축가가 처음부터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단지 건축가는 이를 조정하고 조절하는 역할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접목하여 그는 무주 군청을 비롯한 프로젝트에서 농민의 삶을 건축에 담고자 하였다.

 


[정기용의 대표 작품]

무주군에서 정기용의 건축 작품은 크게 공공시설과 의료 복지 시설, 상업 시설, 교육 문화 시설로 구분할 수 있다. 공공시설로는 진도리 마을 회관과 무주 군청 뒷마당 리노베이션, 무주읍 주민 자치 센터, 적상면 주민 자치 센터, 부남면 주민 자치 센터,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 무풍면 주민 자치 센터, 무주 공설 운동장, 농민의 집[농업인 회관], 무주 IC 만남의 광장, 무주 청소년 야영장, 무주 테니스장, 무주 청소년 수련원, 무주 시장 현대화 프로젝트, 녹색 화장실, 아름다운 화장실, 버스 정류장 등이 있다. 의료 복지 시설로는 무주 공설 납골당과 무주 보건 의료원 리노베이션, 무주 노인 전문 요양원, 무주 종합 복지관이 있으며, 상업 시설로는 농산물 유통 센터와 농산물 판매장, 무주 된장 공장이 있다. 교육 문화 시설로는 서창 향토 박물관과 곤충 박물관, 천문 과학관, 청소년 문화의 집, 안성면·무주읍 폐교 리노베이션, 전통문화 공예촌이 있다. 이 중 몇 작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는 정기용이 '농촌의 공공시설은 주민의 중앙 정부 시책을 하달하는 행정 기관이 아니라 주민들의 자율성과 지역성을 보장해 주는 건축'이어야 한다는 전환기적 사고 방식을 적용하여 만든 작품이다. 당시는 면사무소[현 주민 자치 센터]를 기능적인 측면에서 사무 공간 외에 집회와 교육, 문화, 정보 및 소규모 회합 공간으로 생각하던 시기였다. 정기용은 여기에서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하여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작은 목욕탕'을 계획하였다.
건축 계획에 있어서 정기용은 건물과 주변과의 관계를 맺고자 하였다. 즉 건물과 하늘, 땅, 주변과의 관계를 추구하였다. 따라서 안성 면민 회관과 주변인 덕유산(德裕山)을 고려하여 로비를 덕유산 방면으로 틀고 칠연 폭포를 상징하는 수변 공간을 서쪽에 만들었으며, 하늘과의 관계를 맺기 위하여 2층 다목적 공간에 하늘과 닿을 수 있는 빛의 공간을 세웠다. 건물은 동서 방향으로 길게 배치하여 주변의 농토, 땅과의 연결을 시도하였고, 편안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남과 북에 현관을 두는 한편 회랑 공간을 마련하였다. 북쪽에는 덩굴 식물을 식재하여 시간과 더불어 건물이 완성되는 그의 철학을 반영하였다.

 

2. 무주 공설 운동장
무주 공설 운동장은 정기용이 무주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10여 년 동안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이며 그를 가르친 작품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시간과 건축물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1997년에 무주군에서 정기용이 군수와의 회의를 마치고 군수의 안내로 운동장에 가면서 건축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운동장 건축이 본부석 위주의 권위적인 건축이었다면, 주민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운동장은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 운동장 건축이 항시 주민과 호흡하며 쉴 수 있고 호흡할 수 있는 건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물음에 답을 주고 있는 건물이다. 더불어 정기용의 건축 철학인 시간과 더불어 완성되는 건축적 미학도 담겨 있는 작품이다.
정기용은 본부석 외의 관람자 스탠드에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기 위해 등나무를 얹었다. 공사비를 절감하고 식물이 주인이 되는 집을 짓고자 한 것이었다. 지름 6㎝의 원형 파이프 4개를 한 다발로 묶어 큰 줄기를 형상화하고 때로는 2개, 3개를 묶어 작은 줄기를 형상화하였다. 그리고 그 위에 등나무가 편안하게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가벼운 원호 모양의 구조물을 얹었다. 즉, 구조물이 등나무를 닮은 것처럼 원형 파이프를 사용하였고 등나무의 성장 방향을 따라 스탠드의 방향을 원호 모양으로 하였다. 여기에서 원호의 끝은 스탠드 맨 뒤에 앉은 사람의 시야가 가리지 않도록 하면서 햇볕의 관계를 고려하였다. 등나무가 쉽게 구조물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와이어로 엮었으며, 스탠드 바닥에 조명을 설치하여 밤이 되면 은은하게 등나무들이 보이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세계에서 유일한 등나무 운동장이 완성되었다. 완공된 날 주민들은 자기 집이 완성된 것 같이 집들이를 하였고, 주민들의 산책 공간과 운동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울러 등나무와 조명이 어우러져 문화 공간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겼다. 이렇게 무주 등나무 운동장은 주민의 의견을 수렴한 군수와 건축가에 의하여 자연과 시간과 건축이 어울리는 가장 이상적인 건축물로 완성되었다.

3. 무주 군청과 뒷마당 리노베이션
정기용은 "한국의 관공서 건물은 그동안 권위 위주의 업무와 기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는 관공서 건물은 주민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철저히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관공서 건물이 지켜야 할 점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 도시에 사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줄 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건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관공서는 주민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건물이 아닌 주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주민들과 호흡하는 편안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기용은 무주 군청 리노베이션을 통하여 이러한 점들을 재해석하고자 하였다.
정기용은 뒷마당의 리노베이션과 더불어 기존의 조건을 존중하면서 군청 전체의 이미지를 어떻게 쇄신할 것인가, 근무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주민들이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군청 외관에 여러 가지 재료로 세워진 담장을 철거하였다. 열린 마음, 열린 행정을 추구하고자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고 건물의 투명성을 강조하였다. 또 화장실과 군청 3층을 리노베이션하고 입면을 조정하였다. 청사 전면은 목재와 패널로 마감하고 의회동은 목재 재료의 색으로 된 패널로 마감하여 나무를 붙였다.
정기용은 우리나라의 관공서 건축이 주차장으로 인하여 공공 건축에 대한 주민의 접근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전환하기 위하여 뒷마당에 마당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마당을 높이고 그 아래 지하에는 주차장을 조성하여 공사비를 절약하고 마당의 영역성을 강조하였다. 또 사람들을 위한 공간, 사람들이 움직이고 이동하면서 머무르고 소통하는 공간을 생각하여 민원실과 군청 본관 사이에 회랑을 만들었다. 회랑은 마당 위에 생긴 길이면서 연결 통로이고, 연속된 퍼걸러(pergola)이자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마당 북쪽에는 작은 계단을 두어 기념 촬영과 작은 무대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본관 3층에는 동서로 하늘이 보이는 아주 작은 정원을 만들어 군수실 옆에서 기다리는 손님이나 직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하였다.
본관은 전면 캐노피(canopy)를 평범한 현관으로 고치고 무주 지역의 민물 어종을 키우는 어항으로 대체하였다. 캐노피 상부는 인터넷 카페로 만들어 직원은 물론 무주 주민들이 자유스럽게 이용하도록 하여 권위주의를 탈피하도록 하였다. 옥상을 두지 않고 지붕을 덮었으며 역사성을 고려하여 동쪽 타일벽 일부는 원래의 모습대로 남겨 두었다. 그리고 그 벽면이 땅에 닿는 부분에 담쟁이덩굴을 심어 시간과 건물이 점차적으로 완성되는 모습을 추구하였다. 이렇게 본관 전면의 캐노피가 사라지면서 외관이 깔끔해졌고, 담쟁이덩굴이 그린 벽화는 사계절을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또 다른 그림을 만들어 주었다. 뒷면의 주차장이 지하로 가면서 깔끔한 마당이 생겼고 옥외 공간의 무질서함이 없어졌으며, 주민이 주인이 되는 공간을 창출하였던 것이다.

4. 버스 정류장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에서는 사람이 직접 사는 건물이 아닌 건축도 만나게 된다. 바로 버스 정류장과 무주 추모의 집[무주 공설 납골당]이다. 무주 추모의 집은 납골당으로 무주 지역의 자연과 환경을 담으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반면 버스 정류장은 작은 조형물이자 건축이면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기용은 버스 정류장을 작업하면서 첫째 원칙으로 정류장을 힘 있게 존재하도록 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25㎝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로 벽체를 세웠다. 벽체의 한 부분을 창처럼 오려 내어 버스 정류장 뒤편의 풍경을 끌어들이고, 창으로 오려 낸 사각형을 90° 앞으로 회전하여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있는 의자를 만들었다. 의자는 콘크리트 벽에 붙여진 부가물이 아닌 콘크리트 벽에서 생성된 의자처럼 느끼도록 하였으며, 그 위에 경사 지붕을 얹어 완성하였다.정기용은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는 의자와 벽을 통하여 '버스 정류장'이자 '자기의 집'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콘크리트 재료를 통하여 자연과 대립하는 힘을 느끼도록 하는 한편, 창을 통하여 무주 지역의 경치를 끌어들이고자 하였고, 꺾어진 의자를 통하여 무주 노인들의 사랑방을 추구하였다. 즉 풍경을 초대하고, 바람을 막아 내고, 시선을 움직이는 버스 정류장이 농촌 속의 도시가 되도록 하였던 것이다.

 

 

[무주 프로젝트에서 추구한 건축적 정신]

정기용은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이후 우리나라의 전통 흙집을 연구하였다. 그는 흙이 콘크리트와는 달리 생태계의 순환 원리가 적용되는 장점에 주목하였고, 흙은 가장 민주적인 건축 재료라고 생각하였다. 흙을 이용하여 무주 지역과의 인연을 맺게 되는 작품 중 하나가 무주군 진도리 마을 회관이었다. 이는 무주군에서 공공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바탕이 되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약 10여 년간 무주 곳곳에 공공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다. 정기용은 흙으로 건축한 진도리 마을 회관을 짓게 된 것을 '감응'이라는 낱말로 풀어냈다.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를 건축할 때에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건물 내부에 공공 목욕탕을 만들었다. 이 밖에 무주 공설 운동장, 무주 군청 등 10여 년간 무주 지역에서 공공 건축 프로젝트를 시행하며, 건축가는 추상적 의미의 사회적 요청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요구를 공간으로 반영하는 것임을 실천하였다. 이처럼 정기용은 주민의 삶과 자연을 활용하면서 주민들과의 소통을 추구하였다.

정기용이 무주 프로젝트에서 추구한 건축적 정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연 친화적인 농촌 건축을 추구하였다. 그는 진도리 마을 회관 건축에서 그동안 연구하였던 흙 건축을 시도하였다. 물론 초기에 주민들이 반대하여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존의 콘크리트 건축에 대한 반발과 건축물을 쓰레기로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생태 건축적인 면에서 건축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다른 건축에서도 추구되어 천연 재료를 사용하고 소멸되는 건축 재료를 추구하였다. 따라서 외장재로 목재를 사용하고, 패널을 사용할 경우는 목재를 닮은 색상의 재료를 사용하였으며 적벽돌과 점토 벽돌을 활용하였다.

둘째, 건축 특히 공공 건축에서 주민이 원하는 건축을 추구하였다. 정기용은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에서 보여 주었듯이 일반적인 관공서 건축이 가지는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진정 주민이 주인이 되는 공공 건축을 추구하였다. 특히, 농촌 공공 건축에 있어서는 주민의 주인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주민 자치 센터는 일반적인 사무 공간이 아닌 주민의 집회, 교육, 정보 공간이면서 진정으로 주민이 주인이 되는 곳임을 강조하여 주민이 원하는 공간을 창출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민들이 원하는 공동 목욕탕을 계획하였고, 이는 다른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그의 주민을 위한 의식을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셋째, 관계 맺기이다. 정기용은 적상면 주민 자치 센터를 건축하면서 무주군 적상면이 가지는 자연환경, 인문 환경과의 관계 맺기를 중시하였다. 무주군 적상면에 있는 적상산(赤裳山)의 자연을 끌어들이기 위해 3층으로 건축하고 건물의 형태를 프레임 구조로 하였다. 건물의 창을 통하여 적상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램프를 따라 올라가면서 주변의 자연환경을 감상하고 이를 통해 주민들이 무주군 적상면에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도록 하였다. 또 인문 환경으로서 무주군 적상면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크고 소중한 역사적 자원인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생각하였다. 그는 이러한 역사적인 내용과 관계를 맺기 위하여 램프를 따라 올라가는 중간에 『조선왕조실록』 모양의 조형물을 탑처럼 쌓아 놓고 그 내부를 거울로 만들었다.

넷째, 정기용이 추구한 건축적 정신은 질서이다. 그는 부남면 주민 자치 센터를 통하여 마을의 질서, 하늘의 질서를 찾고자 하였다. 부남면 주민 자치 센터와 복지 회관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하여 이들 건물과 천문대를 연결하고 주변을 정리하였다. 천문대는 무주군 부남면의 밤하늘에 뜨는 쏟아지는 별들과의 질서를 잡아 주기 위하여 자연과 건축, 하늘의 질서와 건축을 추구하였다. 이는 또 다른 프로젝트인 곤충관에 있어서도 곤충과 식물의 관계에 질서를 잡아 주기 위하여 식물원을 계획하였으며, 무풍면 주민 자치 센터에서 풍경과 건축의 질서, 관계를 설정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철학 이면에 정기용이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하였던 점은 사람의 삶과 자연의 삶을 잇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건축과 식물, 시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건축은 사람과 식물과 시간이 더불어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건축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과 식물에 의해서 완성되어지는 것이지 건축가에 의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기용의 작품인 무주 군청 동쪽 벽화나 무주 공설 운동장, 안성 군민 회관 등에서 보았듯이, 그는 건축가에 의해서 단시간에 건축을 완성하려 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서 식물과 사람에 의해서 건축이 완성되도록 하였다.

궁극적으로 건축가 정기용은 무주 프로젝트를 감응의 건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무주 지역을 방문하고, 무주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소통하며 무주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의 삶을 건축에 담고자 노력하였고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공공 건축에 집중하였다. 그러면서도 자연과의 관계, 질서 맺기를 중시하여 흙 건축을 도입하고 천연 소재를 활용하였으며, 자연과 사람과 시간이 공존하고 이루어 가는 건축을 추구하였다.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였던 것처럼 정기용은 궁극적으로 건축가가 추구하는 '올바른 방식의 집 짓기'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https://youtu.be/hVLMIiCKRx8

[참고문헌]

박한규, 『건축학 개론』(기문당, 1991)

정기용, 『감응의 건축』(현실 문화, 2008)

정기용, 『사람 건축 도시』(현실 문화 연구, 2008)

정기용, 『정기용 건축 작품집』(현실 문화 연구, 2011)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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